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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야마토급 전함을 언제,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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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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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저명한 작가들에 의하면, 전후 일본 점령과 함선 건조 기록을 확보할 때 까지 아무 정보도 알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것은 권위있는 몇몇 문서의 정보를 검토하면 알수있다. 이 글은 이 작업으로 얻은 미국이 가졌던 이 전함들의 정보의 상태를 연대순으로 나열한것이다.


존 프라도스의 "연합함대의 해독"에서 나오듯이, 미국은 태평양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아래와 같은 평가를 내렸다


1936년, 일본어 장교 ( 일본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어를 말하고 쓸줄 아는 미해군 정보장교) 인 Fred F. Rogers 대령과 도쿄의 미해군 아타셰는, "일본이 45,000톤에서 55,000톤급의 함선을 계획하고있고, 35,000톤급 전함을 건조하는데 주저하지 않을것. 또한 워싱턴 조약의 제한을 맞추지않을것" 이라고 보고했고, 로저스 대령은 나가노 오스미 해군 장관의 비밀 국회 증언을 통해 다음의 효과를 얻었다.


"다가오는 조약 만료의 결과로 우리는 함급, 품질 등과 관련해 함선 건조에서의 자유를 누릴것이다. 이 자유와 함께, 우리는 국가 요구 사항에 맞게 특별히 건조된 함선을 건조 할수 있고 이를 통해 수치적 평등의 필요성을 제거하는 이점을 얻을 수 있다."


1938년 1월 로저스 대령의 후임자인 해롤드 M 베미스는 "일본이 35,000톤을 넘어서는 2척의 16인치급 전함을 건조하고 있고, 3번함의 건조를 계획하고 있으며 4번함도 게획될 수 있다" 라고 보고 하였다.


베미스의 국제 "아타셰 클럽"의 동료들은 이 새 함선들이 조약을 위반하였을것에 분명히 동의하였다. 영국, 독일, 그리고 프랑스의 아테셰들 또한 이 함선이 45,000톤이라고 생각했으며 이탈리아 아테셰는 더욱 구체적인 46,000톤일 것이며, 50,000톤까지 증가 할수있을것이라고 생각하였고, 소련의 아테셰는 35,000톤을 겨우 넘길것이라 생각하였다.


88함대의 13번 함선을 위한 18인치에 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아테셰들은 16인치 12문이 될것이라고 의견이 일치한것으로 보인다. 소련의 아테셰는 일본이 필요한 장비를 수입하지 않고서는 그런 대형 함포를 탑재할 수 없다고 오판 하였으나 이들의 개발 시설의 위치만큼은 정확히 짚었다. 이탈리아의 아테셰는 이러한 함포의 실험에 실패했다고 생각하였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1942년, 8월 툴라기에서 입수된 문서에서는 조잡한 도식과 처음으로 이 함선들이 9문의 함포를 장착했다는 정보를 얻을수 있엇다.


1942년 10월, ONI (해군정보국)은 이 함선이 16인치 9문으로 무장한 35,000톤 급 전함이라 예상했다.


1943년 2월, 과달카날에서 격침된 잠수함 I-1 의 생존자인 타케오 쿠보아키가 함포를 9문 장착했다고 진술했다.


1943년 봄, CINCPAC (태평양 사령관) 정보국은 17.7인치 (45cm) 를 장비하고 있다고 분류했다.


1943년 7월, 포로로 잡힌 일본 파일럿에 대한 심문에서 이 함급의 3번함인 시나노가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으며, 규모가 50,000톤이라고 증언햇다. ONI는 이 함선이 그렇게 클것이라고 믿지 않았고, 시나노가 전함에서 항공모함으로 개장 된 후, 30,000톤으로 줄었을것을것이라고 생각했다. 



1943년 10월, 감청된 교신에서 "특수 40cm" 포탄이 입수되었으며, 미해군은 이 함선들이 16인치급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는 일본이 이 슈퍼 전함 프로그램을 계획했을 때 부터 46cm (18.1인치) 함포를 항상 "특수 40cm"라고 불렀던 일본의 의도대로였다.


1944년 2월 4일, 트루크 섬을 정찰하던 2기의 B-24 정찰기기가 사진을 촬영하였다. 이 사진은 1944년 2월 25일에 처리되었으며, 그중 한장의 한 구석에는 야마토급 전함이 식별되었다. ONI 분석가는 하와이의 사진 판독 정보 부서 (PRISIC) 에서 이 함선이 18인치급 함포를 장착하고 있다고 정확히 판단하였다. 함선 건조 전문가들은 함선을 최소 60,000톤으로 예상하였고, 이 거대한 9문의 함포를 장착하기 위해서는 그정도 규모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디자인이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하였다


1944년 6월, 미국은야마모토 제독의 옛 부관이자 당시 사이판의 나구모 제독의 부관인 미츠하루 노다를 포로로 잡았다. CINCPAC의 에드윈 레이튼이 그를 심문였고 이 포로가 일본의 "특수 40cm"의 속임수를 불음으로써 이 속임수를 밝혀내었다. 이 시점에서 레이튼은 야마토급이 16인치를 장비했다는 확신을 버리고 진주만을 지나 남서태평양으로 가는 7함대 정보원에게 이 정보를 알렸다.




이전에 야마토급들이 16인치 함포를 장착하였다는 주장의 확고한 옹호자였던 레이튼이 이 시기 야마모토 제독의 전 부관을 심문하여 미츠하루 노다가 "특수 16인치"포 에 대한 많은 진술들을 반복하며 레이튼의 의견을 바꾸었다. 여전히 8월 30일 ONI는 일본 해군 함포에 야마토의 더 큰 함포의 장착가능성을 상정하고 40,000톤으로 나열하였다. 야마토급의 출현에 대한 합리적이고 합당한 최초의 개념은 9월 20일 트루크섬에서 찍힌 사진을 기반으로 등장하였다 "


이 정보는 Morison 의 제 12권의 162페이지에 언급되잇다.


"야마토급이 미드웨이 전투에 참여했더라도, 이 전함들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미스테리" 한 함선들이었다. 그러나 CINCPOA와 7함대 정보장교들은 이 함선들의 규모에 대해 1944년 초의 정보와 9월의 포로 심문을 통해 꽤 정하게 알고 있었다."  Dulin과 Garzek의 "전함: 2차 대전의 추축국과 중립국의 전함들" 에서 우리는 미국에 기인한것으로 추정되는 함급의 그림을 2점 발견하였다. 첫번째는 함선의 전체적인 크기만 맞는 조잡하고 부정확한 그림으로 1944년에 그려졌다고 추정되고, 두번째는 훨씬 더 정확한 1945년 3월에 그려졌다고 추정된다."


이 책은 야마토와 자매함인 무사시의 사진들 (대부분은 1944년 10월 23일 시부얀해 해전에서 찍힌 사진) 들이 실려있다. Dulin과 Garzke은 확실한 2장의 야마토의 사진과 조금 덜 뚜렷한 폭격과 뇌격을 당하며 회피기동중인 무사시의 사진을 포함하였다. 이전 사진들과는 달리 이 사진들은 정보장교들이 이 함선의 규모와 무장을 판단하는데 도움을 주었을것이다.


야마토는 또한 1945년 본토 폭격때도 촬용되었다. 이 공격중의 한장면이 이 Dulin과 Garzke의 책에 나온다. 1945년 4월 7일 야마토의 마지막 교전중 더 많은 사진이 찍혔으며, 그중 4장또한 이 책에 실려있다.


야마토의 최후 출격시기의 대한 정보평가는 모리슨의 "2차대전의 미해군 작전에 대한 역사"의 14권에 언급된다.


"불안한 저녁이 54 기동전대를 따랏다. 사거리표에 익숙한 장교들은 데요의 16인치 전함의 42,000 야드의 사거리와 14인치 함포의 테네시의 37,000야드의 사거리에 비해 야마토의 18.1인치 함포가 최대 45,000야드의 사정거리에 달하고 그녀의 속도는 엔드런을 가능하게 만들며, 수송대를 쉽게 따라잡을수 있다고 상기시켰다. "


미국이 보다 완전하고 정확하게 야마토의 실제 크기와 함포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고 전투 계획 수립을 위해 이 평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http://www.navweaps.com/index_tech/tech-084.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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