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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0m1n

비스마르크 추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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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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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s://worldofwarships.com/en/news/common/bis-tory/

 

독일은 1935년 3월 18일 공식적으로 베르사유조약에 대해 맹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 해 여름, 보통의 배수량과 평균적인 무장을 갖춘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를 건조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 해군에 대한 제한을 완전히 개정했던 영국-독일 해군협정이 두 함선의 건조직후에 체결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독일 해군 함선의 총 톤수는 대영제국 해군의 35%를 넘을수 없었습니다. 이전의 제한과는 다르게, 독일은 그들의 함대를 신속하게 다시 재건할수 있엇고, 경제적인 제재는 독일이 조약을 위반하지않을것임을 의미했습니다.

1936년 7월 1일, 함부르크의 블룸 앤 보스의 부두에서 독일을 통일시켰던 철혈재상을 기리기 위해 명명된, 전함 비스마르크의 건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4개월뒤, 킬에서 티르피츠가 건조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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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Kiel)에서 도색작업중인 비스마르크

 

 

비스마르크는 길이 251m, 약 2000명의 승조원 그리고 두꺼운 장갑과 380mm 연장포 4기를 장비했습니다. 또한 3개의 증기 터빈은 150,000 마력을 낼수 있어, 이 해상의 거인을 30노트의 속도로 달릴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비스마르크는 1939년 2월에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외손녀인 "Dorothea Sibylle Katharina Von Loewenfeld"에게 이름을 명명받으면서 진수되었습니다. 이후, 이 전함은 1940년 8월 "Ernst Lindemann"의 지휘아래 취역했고, 다음해 1941년 여름에 전투준비를 끝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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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겐 정박지에서 촬영된 비스마르크 (우측 상단)의 항공사진

 

 크릭스마리네의 사령관이었떤 "Erich Raeder"은 이 강력한 2개의 전함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15대의 전함과 순양전함을 가졌던 영국 해군과의 전투에선 승리를 할 수 없었다는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영국 해군과의 전면전에서 독일 함대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엇던것은, 상선습격뿐이었으며, 이는 1차대전에서 효과적이었다고 증명됬던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2차대전의 독일의 주 목표는 제해권을 차지하는것이 아닌 영국으로 도달하는 중요한 수송등을 막는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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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 1940년


비스마르크의 첫 전투임무는 대서양에서 호위함을 습격하는 것이었고, 샤른호르스트, 그나이제나우, 티르피츠와 비슷한 강력한 적의 전함간의 교전은 피했습니다. 그러나, 티르피츠는 시험운항을 시작했고, 그나이제나우는 영국공군에게 받은 피해로 인해 긴 수리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샤른호르스트의 엔진또한 수리중이었습니다. 연합국은 독일이 그들의 강력한 함선들을 자신들의 호송대에 보낼수있게 수리되는것을 기다리지않았고, 'Rheinübung'작전 (라인훈련)은 예정되로 진행됬습니다.

1941년  5월 18일, 'Günther Lütjens''의 지휘아래, Gotenhafen (현재 폴란드의 Gdynia)에서 중순양함 프린츠오이겐의 호위를 받으며 출항했고, 다음날 Rügen 섬 근처에서 Z-23, Z-10, 그리고 Z-16도 합류했습니다. 

독일은 북대서양에서 해상작전을 수행하기에 그렇게 좋은 지리적 위치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비스마르크가 영국 해협을 지나갈 수 있엇던 반면, 더 큰 함선으로 영국해협을 통과하려는 시도를 했을 경우, 영국에게 탐지될 수 밖에 없었고, 대영제국 함대에게 즉각적인 공격을 받을수밖에 없었습니다. 독일의 프랑스 항복후 점령한 비스케이 만은 쓸만해보였지만, 너무 멀었습니다. 비스마르크의 루트는 아이슬란드 근처의 노르웨이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뻗어나갔습니다.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 사이의 덴마크해협을 통과한후, 연합군의 공군세력의 사거리에서 벗어난 후, 독일 함대는 북대서양에 진입하여 수송선을 기습하거나 상황에 따라서는 가로채도록 명령받았습니다. 그들의 목적지는 더 큰 상선습격을 위해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가 비스마르크와 합류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프랑스의 비스케이 만 이었습니다.

5월 20일, 독일 함대는 카테갓 해협을 지났지만, 13시 00분에 스위스의 순양함 '고틀랜드'의 수상기에 탐지되었습니다. 고틀랜드는 즉각 보고서를 영국에게 전달될 수 있게끔 스톡홀름에 전달 하였습니다. 그 후 그날 저녁, 그 카테갓에 있엇던 독일 함대에 관한 정보는 런던에 보내졌습니다.

그러나 비스마르크 또한 고틀랜드의 무선을 탐지했고, 'Lütjens' 제독은 독일 사령부에 이 정보를 무선 전보로 알렸습니다. 다른 장교에 따르면, 'Lütjens'은 매우 유능한 장교였으나, 전투임무중 무선침묵의 필요성에 대해 알지는 못했습니다.

함대가 일몰무렵 해협을 통과했을때, 노르웨이의 'Vigo Axelsen'이 근처의 "Kristiansand"에서 이를 지켜봤고, 영국군에게 이 귀중한 정보를 전달 했습니다. 5월 21일, 영국 항공기는 베르겐 항구에 있던 이 강력한 함선들의 사진을 촬영하였습니다. 영국 해군은 순양함 노포크와 서포크를 덴마크해협 정찰에 파견하였고, 순양전함 후드,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즈, 그리고 6척의 구축함을 아이슬란드로 파견하였습니다.

독일 함대는 같은날 그들의 보급함을 떠나 베르겐에서 출항했습니다. 프린츠 오이겐이 완전히 보급을 받은 반면, 비스마르크는 충분한 연료를 보급받지 못하였습니다. 5월 22일 아침, 함대에서 최후의 구축함마저 함대를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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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순양함 서포크

 

 

5월 23일 저녁, 함대는 덴마크 해협에 진입했습니다.

- 1725 : 프린츠오이겐의 음향레이더가 프로펠러의 소리를 탐지함.

- 1737 : 연합국 함선이 탐지됬으나, 순양함으로 착각 하였음.

- 1752 : 순양전함 후드가 비스마르크에게 일제사를 발포했고, 최근에 취역했던 최신예전함인 프린스오브웨일즈도 즉각 포격에 참여했습니다. 비스마르크는 즉각 대응 사격을 실시했으나, 흘수 위의 선수갑판에 타격을 입었으며, 이미 부족했던 연료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후드가 포격에 피해를 입었으며,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 1800 : 해전 시작후 8분 뒤, 영국 함선들이 후방 주포를 사용하기 위해 선회를 시작했습니다. 허나, 후드에게 직격된 일제사가 그녀의 탄약고를 유폭시키며, 후드를 관측탑과 후방 연돌사이를 분리하였습니다. 그리고 3분뒤, 단 3명의 생존자를 제외하고, 후드는 모든 승조원과 함께 해저로 가라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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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 추격전을 보여주는 지도

 

프린스 오브 웨일즈또한 7발의 피격을 받았고, 퇴각을 위한 연막을 치기전, 그녀의 새롭게 장착된 주포가 고장났습니다. 'Lindermann'이 프린스 오브 웨일즈를 추격하여 격침시키고 싶어 하였으나, 사령관 'Lütjens' 보호받지않는 호송대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고수하여, 또다른 논란의 여지가 있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독일 함대가 영국 전함을 격침시킬 기회가 있었지만, 덴마크해협에서 더 오래 머무른다는것은 다른 영국 함선을 만날수 있는 확률이 상승한다는 뜻이었습니다. 'Lütjens'은 해전에서 비스마르크가 입었던 피해와, 독일의 기지와의 거리때문에, 추격은 받아들일 수 없는 위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스마르크는 3회의 피격을 받았으며, 속도는 28노트로 느려졌으며, 많은 양의 연료를 잃엇고, 설상가상으로 침수까지 일어나고 있엇습니다. 'Lütjens'은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한 후, 프랑스의 생나제르로 수리를 위해 퇴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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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드를 향해 포격을 실시하는 비스마르크. 프린츠오이겐에서 촬영됨

 

노포크와 서포크가 비스마르크를 추격하는동안 '존 토비' 지휘 아래의 전함 킹 조지 5세, 항공모함 빅토리어스, 호위 순양함과 6척의 구축함으로 구성된 더 거대한 영국 함대가 서쪽에서 접근하고 있엇습니다. 그 동안, 항공모함 아크로열, 순양전함 리나운, 그리고 순양함 셰필드또한 지브롤터에서 접근중이었으며, 총 8척의 전함과 순양전함, 2대의 항공모함, 14척의 순양함, 27척의 구축함이 비스마르크 추격을 위해 출항하였습니다.

5월 24일 19:00시 함선들이 여러 일제사를 날렸으나, 효과적이진 않았음. 같은시각 'Lütjens'은 프린츠오이겐을 함대에서 떠나도록 명령했으며, 비스마르크는 혼자 남았습니다.

23:27시 빅토리어스에서 이륙한 소드피쉬 뇌격기가 비스마르크에 어뢰 1발을 명중시켰으나, 경미한 피해를 입혔을 뿐입니다.

5월 25일 03:10시, 비스마르크는 코스를 변경했고, 날씨가 악화되면서 추적은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아침 07:00에서 09:00사이, 'Lütjens'는 2개의 무선전보를 날렸고, 이 행동은 비스마르크의 위치를 영국에게 알려주었습니다.  24시간넘게 비스마르크는 다양한 속도로 프랑스를 향해 항해하면서, 이동중 피해를 복구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5월 26일 10:30시에 겨우 프랑스의 생나제르 항을 700마일, 35시간 앞두고 카탈리나 비행정에게 탐지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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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열에서 이륙한 소드피쉬 뇌격기

 

20:47시 소드피쉬는 다시 공격을 재개했고, 비스마르크는 2발의 어뢰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1발의 어뢰가 비스마르크의 키(rudder)를 최대로 꺾인채 고정시켰습니다. 수리반이 밤새 키를 수리하려고 시도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으며, 'Lütjens'는 마지막 전보를 보냈습니다.

함선은 기동불능. 최후의 포탄까지 교전하겠음.

21:15시, 크릭스마리네가 지시를 내림 : 모든 잠수함은 어뢰를 장비하여 즉시 비스마르크를 향해 전속력으로 이동할것.

강력한 연합국 함선들이 접근하고, 그녀의 승조원들은 최후의 전투를 준비했습니다. 늦은 오후부터 새벽녘까지, 영국 구축함이 계속 비스마르크를 공격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5월 27일 08:47시, 전함이 포문을 열었습니다. 10:39시, 비스마르크는 거의 영거리에서 어뢰를 피격당했으나, 주포는 침묵을 하고 있엇습니다. 비스마르크는 10:39시 승조원이 수밀문을 열면서 좌현으로 천천히 뒤집히고 있엇습니다. 비스마르크가 침몰하는 동안, 영국 함선들은 116명의 승조원을 구출했으나, 'Lütjens'와 'Lindemann'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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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의 침몰. 도싯셔에서 촬영됨

 

 

 비스마르크 추격전의 이야기는 우연의 일치, 사고, 놀라운 행운으로 가득합니다. 예를들어, 5월 26일 저녁, 첫번째 뇌격기 공격이 비스마르크가 아닌 오인된 셰필드를 공격했을때, 다행히 셰필드는 11개의 어뢰를 피했습니다. 그리고 몇시간전, 아크로열과 리나운은 어뢰공격을 위한 완벽한 위치에 있엇던 잠수함 "U-556"앞을 지나갔으나, 불행하게도 U-556은 이미 모든 어뢰를 발사 한 이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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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싯셔에게 구출되고있는 비스마르크의 생존 수병들

 

비스마르크의 비극적인 첫 임무는 특히 어드미럴 그라프 쉬페가 1939년 몬테비데오항에서 영국의 함정에 걸린 이후, 독일 최고 사령부에 매우 실망적인 인상을 남겼습니다. 대서양에서 북대서양을 제외한 모든 수상함과 관련된 작전은 취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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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 Marschall의 비스마르크의 잔해를 탐사하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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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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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은 북해의 야수 틸피츠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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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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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워쉽 북미 공식 공지를 번역한 글입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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